
Living Bible 말씀 묵상 | 마태복음 강해 시리즈 #045
📖 본문 (마태복음 23:1-39, 개역개정)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이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어리석고 눈 먼 자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이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눈 먼 자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하는 것이요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하는 것이요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하는 것이니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눈 먼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악행을 충만하게 하라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로운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 문맥과 위치
22장의 모든 논쟁이 끝났습니다. 적대자들이 침묵했습니다. 이제 23장은 예수의 가장 강력한 심판 선언입니다. 대상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일곱 번의 "화 있을진저"가 울려 퍼집니다. 마태복음에서 가장 날카롭고 무거운 장입니다.
그러나 이 장은 분노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은 눈물의 애가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비판이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판사의 선언이 아니라 어머니의 통곡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이 장 전체의 색조를 결정합니다.
본문은 세 단락입니다. 바리새인의 행위를 경계하라는 가르침(1-12절), 일곱 가지 화 선언(13-36절), 예루살렘을 향한 애가(37-39절).

✍️ 강해
1.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 외식의 구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예수는 먼저 균형 잡힌 평가를 내리십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맞습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아 율법을 해석합니다. 그 가르침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가르침과 삶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이것이 외식의 핵심 구조입니다. 선포와 실천의 괴리. 무거운 짐을 사람들 어깨에 지우면서 자신은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설교와 삶이 다릅니다. 이것이 종교 지도자의 가장 큰 위험입니다.
외식(휘포크리시스, ὑπόκρισις)은 배우의 연기입니다. 무대 위에서는 영웅이지만 무대 밖에서는 다른 사람. 종교적 외식은 예배당 안에서는 경건하지만 일상에서는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 외식의 세 가지 표현을 드러내십니다. 경문을 넓게 하고, 옷술을 길게 합니다. 경건의 표시를 눈에 띄게 만드는 것입니다. 잔치의 윗자리, 회당의 높은 자리를 좋아합니다. 지위를 탐합니다. 시장에서 문안받고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즐깁니다. 인정을 갈망합니다.
외식의 뿌리는 자기 의(自己義)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의롭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관중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2. 너희는 다 형제니라 — 새 공동체의 원리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바리새인의 방식을 비판하신 후, 제자 공동체의 원리를 선언하십니다. 랍비라 불리지 말라. 아버지라 불리지 말라. 지도자라 불리지 말라. 이것은 직함을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위 구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다 형제니라." 수평적 공동체입니다. 한 선생(그리스도), 한 아버지(하나님), 한 지도자(그리스도). 나머지는 모두 형제자매입니다. 20:26-27의 가르침이 반복됩니다.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것은 결국 낮아짐으로 귀결됩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은 하나님이 높이시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 법칙이 바리새인의 비극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예고합니다.
3. 일곱 가지 화 — 외식의 일곱 얼굴
예수는 일곱 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를 반복하십니다. 이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비탄입니다. "화(오우아이, οὐαί)"는 애도의 감탄사입니다. 안타깝도다, 슬프도다에 가깝습니다.
첫 번째 화(13절): 천국 문을 닫는 자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가장 먼저 가야 할 자들이 천국의 입구를 막고 있습니다. 율법의 해석이 오히려 복음의 장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돕는 대신, 자신들이 만든 규정이 장벽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문지기가 오히려 문을 닫는 자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화(15절): 지옥 자식을 만드는 자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열심히 전도하지만 잘못된 복음을 전합니다. 개종자를 만들었지만 그 개종자가 자신들보다 더 나쁜 상태가 되었습니다. 외식적 종교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복음 없는 종교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어둠으로 이끕니다.
세 번째 화(16-22절): 눈 먼 인도자
맹세의 문제입니다. 성전 금으로 맹세하면 지키고, 성전으로 맹세하면 안 지켜도 된다는 논리. 예물로 맹세하면 지키고, 제단으로 맹세하면 안 지켜도 된다는 논리. 이것은 하나님을 피해가는 작은 구멍을 찾는 것입니다. 맹세의 본질은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입니다. 그 본질을 피하면서 형식만 지키는 것이 눈먼 인도자의 모습입니다.
네 번째 화(23-24절): 하루살이와 낙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가장 작은 것에는 철저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놓쳤습니다. 향신료 십일조를 철저히 계산합니다. 그러나 정의, 긍휼, 믿음은 없습니다.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율법의 작은 것들에 집착하면서 큰 것들을 무시합니다. 형식의 정확성과 실질의 공허함. 이것이 율법주의의 비극입니다.
다섯 번째 화(25-26절): 겉과 속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외적 정결에 집중하지만 내적 상태는 부패했습니다. 겉을 깨끗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안을 무시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고 하십니다. 안이 깨끗해지면 겉도 깨끗해집니다. 15장의 가르침(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반복됩니다.
여섯 번째 화(27-28절): 회칠한 무덤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유월절 전에 무덤에 흰 회칠을 했습니다. 순례자들이 모르고 밟아 부정해지지 않도록. 아름답게 보이지만 안은 죽음과 더러움이 가득합니다. 외적 아름다움과 내적 부패의 극단적 대비. 이것이 외식의 가장 날카로운 이미지입니다.
일곱 번째 화(29-36절): 선지자 무덤 꾸미기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과거의 선지자들을 기리면서 현재의 선지자를 거부합니다. 죽은 선지자에게는 무덤을 만들어 주면서, 살아 있는 선지자는 핍박합니다. 그들의 조상이 선지자들을 죽였다고 비판하면서, 자신들도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더 나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외식의 가장 깊은 층은 자기기만입니다. 자신이 조상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같은 구조 안에 있습니다. 심지어 더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비판에서 눈물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일곱 화 선언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분노하지 않으십니다. 우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이름을 두 번 부르는 것은 깊은 감정의 표현입니다. 누가복음 13:34에도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예수가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신 것이 19:41에도 있습니다. 예수는 자신을 거부하는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습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이 이미지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돌봄을 암탉의 품에 비유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독수리의 날개로 이스라엘을 돌보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는 그보다 더 따뜻한 이미지, 암탉을 사용하십니다. 위협이 오면 어미 닭은 날개를 펼쳐 병아리들을 품습니다. 자신이 죽더라도.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모으려 했으나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선택이 충돌합니다. 하나님은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모이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자유롭게 거부하도록 허용하십니다. 그 거부 앞에서 하나님이 우십니다.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 자유로 하나님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거부가 하나님을 슬프게 합니다. 예수의 눈물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더 깊은 묵상을 원하시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다시, 예수를 따르다: 마태복음 51일 묵상으로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송병민목사와 함께 하는 다
다시, 예수를 따르다: 마태복음 51일 묵상으로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송병민목사와 함께 하는 다시, 복음으로 성경 묵상 시리즈) - 저자가 송병민인 eBook입니다. PC, Android, iOS 기기에서 Google Play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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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의 적용
23장은 먼저 거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일곱 모습이 오늘 내 안에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천국 문을 닫고 있지 않습니까. 나의 종교적 엄격함이 다른 사람들이 예수께 나아오는 것을 막고 있지 않습니까. 작은 것에는 철저하면서 정의와 긍휼을 놓치고 있지 않습니까. 겉을 깨끗이 하면서 안은 탐욕과 방탕으로 채우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의 신앙인들을 기리면서 현재의 하나님 말씀에는 저항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장은 또한 소망입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예수는 오늘도 우리를 모으려 하십니다. 우리가 외식과 자기기만 속에 있을 때도, 예수는 날개를 펼치고 계십니다. 그 날개 아래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오늘의 부르심입니다.
🙏 기도
주님, 오늘 이 거울 앞에 정직하게 서게 하소서.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외식을 회개합니다. 겉을 꾸미면서 안을 무시하는 회칠한 무덤의 모습을 보여 주소서. 작은 것에 철저하면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놓치고 있다면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암탉처럼 날개를 펼치시는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예루살렘을 향해 우신 예수님의 눈물이 오늘도 저를 향해 흐름을 알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다음 묵상: 마태복음 24:1-31 — 감람산 강화, 마지막 때의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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