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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1-17 묵상 — 죄를 사하시는 권위, 새 포도주와 새 부대

by 묵상하는 사람 2026. 6. 30.

Living Bible 말씀 묵상 | 마태복음 강해 시리즈 #018


📖 본문 (마태복음 9:1-17, 개역개정)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위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것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더 찢어지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이는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전되느니라


🔍 문맥과 위치

8장에서 예수는 자연과 귀신의 세계를 다스리는 권위를 드러내셨습니다. 9장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죄를 사하는 권위입니다. 유대인의 신학에서 죄를 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는 그 권위를 공개적으로 행사하십니다.

본문은 세 단락으로 흐릅니다. 중풍병자 치유와 죄 사함 선언(1-8절), 마태를 부르심과 세리들과의 식탁(9-13절), 금식 논쟁과 새 포도주 비유(14-17절). 세 단락 모두 같은 긴장을 보여줍니다. 예수가 가져오신 새로움과 기존 종교 체계의 충돌. 이 충돌은 앞으로 더 깊어질 갈등의 예고입니다.


✍️ 강해

1. 작은 자야 안심하라 — 예상 밖의 선언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이 원한 것은 몸의 치유였습니다. 중풍병자를 침상에 눕혀 데려온 것은 걷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첫 마디는 예상을 벗어납니다. 죄 사함입니다.

"작은 자야(테크논, τέκνον)"는 아이야, 자녀야라는 따뜻한 호칭입니다. 예수는 침상에 누운 병자를 먼저 그 존재로 보십니다. 몸의 문제 이전에 영혼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안심하라"고 하십니다.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죄받지 않는다는 선언이 먼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병과 죄를 연결했습니다. 병은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중풍병자는 몸의 고통뿐 아니라 죄책의 짐도 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그 가장 깊은 짐부터 내려놓으십니다. 팀 켈러가 말하듯, 예수는 우리가 가져오는 문제보다 더 깊은 문제를 보시고 그것부터 해결하십니다.

2. 어느 것이 쉽겠느냐 — 권위의 증명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서기관들은 속으로 신성모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그 생각을 아시고 정면으로 다루십니다. 죄 사함의 선언과 치유의 명령 중 어느 것이 쉬운가. 표면적으로는 죄 사함이 더 쉬워 보입니다.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예수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행하십니다. 중풍병자를 일으키심으로써 죄 사함의 권위를 증명하십니다.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예수는 자신을 인자(人子, Son of Man)라 부르십니다. 다니엘 7:13-14의 인자, 하나님으로부터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은 자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닙니다. 메시아적 자기 선언입니다.

중풍병자가 일어났습니다. 무리가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몸의 치유가 죄 사함의 권위를 증언합니다. 존 스토트가 말하듯, 예수의 기적은 단순한 자선 행위가 아닙니다. 메시아의 정체를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3. 마태를 부르심 — 세관에 앉은 자를 향한 부르심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는 세리입니다. 세리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경멸받는 직업군이었습니다. 로마를 위해 동족에게 세금을 거두는 자. 종종 부정한 방법으로 착취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부정한 자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자가 예수의 제자가 됩니다.

세관에 앉아 있다는 표현이 의미심장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위치가 아닙니다. 삶의 방식이고, 정체성이고, 사회적 낙인이었습니다. 예수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마태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는 즉시 일어나 따랐습니다. 4장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버려두고 따른 것처럼. 세관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의 네트워크인 세리와 죄인들을 예수께 데려온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 자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소개합니다.

4. 의사는 병든 자에게 — 복음의 방향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앉아 식사하시는 예수를 비판합니다. 예수는 비유로 응답하십니다. 의사는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를 찾아갑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 당연함이 바리새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것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 호세아 6:6 인용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 종교 의식이 아니라 긍휼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제사는 알았지만 긍휼을 몰랐습니다. 율법의 문자는 지켰지만 율법의 정신을 잃었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강조하듯, 복음은 자격 있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격 없음을 아는 자를 위한 것입니다. 의사는 자신이 병들었음을 아는 자에게 갑니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에게 예수는 할 일이 없으셨습니다.

5. 새 포도주와 새 부대 — 복음의 새로움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이는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전되느니라."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 문제를 제기합니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 예수는 먼저 혼인 잔치의 비유로 답하십니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 손님들이 슬퍼할 수 없습니다. 예수 자신이 신랑이고, 지금은 혼인 잔치의 때입니다. 금식은 부재의 표현인데, 신랑이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두 비유가 이어집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것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것. 둘 다 같은 원리입니다. 새것과 낡은 것은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가 가져오신 복음은 기존의 종교 체계 안에 덧붙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입니다.

프란시스 쉐퍼가 말하듯, 기독교는 기존 종교에 예수를 추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창조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가 필요합니다. 예수를 만난 자는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낡은 틀 안에 예수를 담으려는 시도는 결국 둘 다를 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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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예수를 따르다: 마태복음 51일 묵상으로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송병민목사와 함께 하는 다

다시, 예수를 따르다: 마태복음 51일 묵상으로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송병민목사와 함께 하는 다시, 복음으로 성경 묵상 시리즈) - 저자가 송병민인 eBook입니다. PC, Android, iOS 기기에서 Google Play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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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의 적용

이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나는 예수께 몸의 필요만 가져옵니까, 아니면 가장 깊은 곳의 죄책도 가져옵니까. 예수는 "작은 자야 안심하라"고 하십니다. 죄 사함이 먼저입니다.

둘째, 나는 내 삶의 세관에 앉아 있는 사람들, 즉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봅니까. 마태가 자신의 네트워크를 예수께 데려온 것처럼, 나의 삶도 누군가를 예수께 데려가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까.

셋째, 나는 예수를 기존의 삶에 추가하려 합니까, 아니면 예수로 인한 근본적 새로움을 받아들였습니까. 새 포도주는 새 부대가 필요합니다. 예수는 내 삶의 중심을 요구하십니다.


🙏 기도

주님, 오늘도 죄 사함의 은혜 앞에 나아갑니다. 몸의 필요보다 더 깊은 곳의 죄책을 내려놓게 하시고 작은 자야 안심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 삶이 새 부대가 되어 복음의 새 포도주를 온전히 담게 하소서. 세관에 앉은 마태를 부르신 것처럼 오늘도 저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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