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ving Bible 말씀 묵상 | 마태복음 강해 시리즈 #019
📖 본문 (마태복음 9:18-38, 개역개정)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회당장이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한 여자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다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예수께서 그 회당장의 집에 들어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니 일어나는지라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새 맹인 둘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통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 문맥과 위치
9장은 치유와 논쟁의 연속입니다. 중풍병자, 마태의 부르심, 새 포도주 논쟁에 이어 이제 본문은 더 많은 치유 이야기들을 쏟아냅니다. 회당장의 딸, 혈루증 여인, 두 맹인,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자. 그리고 9장은 목자 없는 양처럼 기진한 무리를 보시는 예수의 긍휼로 마무리됩니다.
마태는 이 단락을 의도적으로 배열합니다. 8-9장 전체가 하나의 구조입니다. 열 가지 기적이 연속으로 등장하며 예수의 메시아적 권위를 입체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권위의 절정에서 예수는 눈을 돌려 무리를 보십니다. 기적을 행하신 분이 불쌍히 여기십니다. 능력과 긍휼이 함께입니다.


✍️ 강해
1. 회당장의 절박함 — 죽음 앞에서 예수께
"한 회당장이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회당장은 지역 종교 공동체의 지도자입니다. 사회적 지위와 종교적 권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 앞에 엎드립니다. 딸이 죽었습니다. 그 앞에서 지위도, 권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의 믿음의 표현이 놀랍습니다. "방금 죽었사오나." 이미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 옵니다. 치유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구하는 것입니다. 죽음조차 예수께는 장애물이 아니라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절망 가운데서도 예수께 나아가는 믿음의 본질입니다.
예수는 즉시 일어나 따라가십니다. 길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조건을 달지 않으셨습니다. 죽은 딸을 살릴 수 있는지 확인하지 않으셨습니다. 절박한 아버지의 요청 앞에 그냥 일어나 따라가셨습니다. 팀 켈러가 말하듯, 예수는 우리의 요청을 심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필요를 향해 움직이시는 분입니다.
2. 혈루증 여인 — 군중 속에서 만지는 손
"한 여자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다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회당장의 딸을 향해 가시는 길, 군중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입니다. 열두 해. 회당장의 딸이 열두 살이었다는 마가의 기록과 같은 숫자입니다. 마태는 이 두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겹칩니다.
혈루증 여인의 처지는 나병환자와 비슷했습니다. 레위기의 정결법에 따라 부정한 자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녀가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부정하게 됩니다. 12년 동안 만지면 안 되는 사람, 만져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 고립의 깊이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예수의 뒤로 몰래 다가옵니다. 당당히 나설 수 없었습니다. 그 겉옷 가를 만지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미신적 행동이 아닙니다. 유일한 방법으로 예수를 향해 손을 뻗는 간절함입니다.
예수가 돌이키십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군중 속에 숨어 있던 여인을 찾아내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딸아"라고 부르십니다. 첫 번째는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였고, 이제 이 여인에게 "딸아"입니다. 예수는 병을 고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을 보시는 분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겉옷 가를 만지는 것이 능력이 아닙니다. 그 손을 뻗게 한 믿음이 능력입니다. 믿음은 크기가 아닙니다. 방향입니다. 어디를 향해 손을 뻗는가. 그 손이 예수를 향하면 됩니다.
3. 죽은 소녀 — 잔다고 하시니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 회당장의 집에 들어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장례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는 직업적 애도꾼들입니다. 당시 유대 풍습에서 사람이 죽으면 즉시 고용했습니다. 죽음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예수는 말씀하십니다.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그들이 비웃었습니다. 죽음을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의 비웃음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눈에 죽음은 잠입니다. 부활의 능력 앞에서 죽음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니 일어나는지라." 비웃는 무리를 내보내십니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잡으십니다. 아무런 의식도, 긴 기도도 없습니다. 죽은 자의 손을 만지는 것은 부정하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손길은 부정을 정복합니다. 소녀가 일어납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말하듯,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혁명적 선언입니다. 예수가 죽음의 손 안에서 소녀의 손을 잡으신 이 장면은, 십자가와 부활의 예고입니다. 죽음은 마지막이 아닙니다.
4. 두 맹인 — 믿음대로 될지어다
"맹인 둘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두 맹인은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 부릅니다. 메시아 칭호입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예수가 누구신지를 압니다. 영적 통찰이 육적 시각을 앞섭니다. 그들은 집 안까지 따라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가 묻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이것은 불필요한 확인이 아닙니다. 믿음을 이끌어내시는 질문입니다. 그들이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오이다." 예수가 눈을 만지십니다. "너희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 눈들이 밝아졌습니다.
믿음대로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믿음의 크기가 결과를 결정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이 결과를 이루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향한 믿음, 그것이 열쇠입니다. 존 스토트가 말하듯, 믿음은 결과를 만드는 힘이 아닙니다. 결과를 만드시는 분께 자신을 여는 것입니다.
5. 목자 없는 양 —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8-9장 내내 기적을 행하신 예수가 멈추십니다. 그리고 무리를 보십니다. 보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불쌍히 여기다(스플랑크니조마이, σπλαγχνίζομαι)"는 헬라어에서 가장 강한 긍휼의 표현입니다. 창자가 뒤틀리는 감정입니다. 표면적 동정이 아닙니다. 내장이 움직이는 깊은 공감입니다. 예수는 무리의 고생과 기진함을 보시고 그렇게 느끼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 에스겔 34장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거짓 목자들을 꾸짖으시며, 당신이 직접 양을 돌보실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는 그 약속의 성취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양들은 여전히 기진해 있습니다. 목자를 필요로 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긍휼이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불쌍히 여기심이 기도의 요청으로 연결됩니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을 보내달라고 청하라. 이것이 10장 제자 파송의 서문입니다. 예수의 긍휼은 제자들을 통해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프란시스 쉐퍼가 강조하듯, 복음은 개인의 구원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기진한 무리를 보시는 예수의 눈을 가진 자들이 세상으로 보내어집니다. 긍휼이 선교의 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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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의 적용
이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절박함을 안고 예수께 왔습니다.
회당장은 죽은 딸을 안고 왔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12년의 고립을 안고 왔습니다. 두 맹인은 어둠 속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예수는 같은 방식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일어나 따라가시고, 돌이켜 보시고, 손을 만지셨습니다.
오늘 나의 절박함은 무엇입니까. 죽음 같은 상황입니까. 12년의 고립 같은 외로움입니까. 보이지 않는 어둠입니까. 그 절박함을 안고 예수께 나아가는 것, 겉옷 가라도 만지려 손을 뻗는 것,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긍휼은 우리에게 머물지 않습니다. 무리를 보시는 그 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기진한 사람들이 오늘도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습니다. 우리가 일꾼으로 보내어지는 것을 기도로 구해야 합니다.
🙏 기도
주님, 오늘도 절박한 마음으로 주께 나아갑니다. 죽음 같은 상황 앞에서도 주께 엎드린 회당장처럼, 포기하지 않고 주를 찾게 하소서. 군중 속에서 손을 내밀었던 여인처럼, 주의 겉옷 가라도 만지려는 믿음을 주소서. 목자 없는 양처럼 기진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눈을 저도 갖게 하소서. 추수할 일꾼으로 저를 보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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