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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7:24-18:20 묵상 — 성전세와 어린아이, 천국에서 큰 자

by 묵상하는 사람 2026. 7. 6.

Living Bible 말씀 묵상 | 마태복음 강해 시리즈 #035


📖 본문 (마태복음 17:24-18:20, 개역개정)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희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다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내라 하시니라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실족하게 하는 것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아니하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아니하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아니하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아니하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문맥과 위치

17장 후반부와 18장이 하나의 단락을 이룹니다. 성전세 사건(17:24-27)이 18장의 공동체 강화로 이어집니다. 예수는 세금을 냄으로써 불필요한 실족을 피하십니다. 그리고 곧바로 공동체 안에서 실족하게 하는 것을 가장 엄중하게 경고하십니다. 이 연결이 의도적입니다.

18장은 마태복음의 네 번째 강화입니다. 산상수훈(5-7장), 파송 강화(10장), 천국 비유(13장)에 이은 공동체 강화입니다. 주제는 천국 공동체 안에서의 삶입니다. 누가 큰 자인가, 작은 자를 어떻게 대하는가, 잃어버린 자를 어떻게 찾는가, 형제의 죄를 어떻게 다루는가. 이 질문들이 본문을 이끕니다.


✍️ 강해

1. 성전세와 아들들의 자유 — 자유와 책임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내라."

성전세는 매년 성인 남자가 내는 반 세겔의 세금이었습니다. 성전 유지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논리를 전개하십니다. 왕의 아들은 세금을 면제받습니다. 예수는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성전세를 낼 의무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내십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십니다. 이것이 자유의 역설입니다. 의무가 없지만 공동체를 위해 납니다. 권리를 주장하는 대신 관계를 선택하십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9장에서 같은 원리를 가르칩니다. 사도의 권리가 있지만 복음의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 포기합니다. 자유는 자기 권리 주장이 아닙니다. 타인을 위해 자유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팀 켈러가 말하듯, 복음이 만드는 자유는 자신을 위한 자유가 아닙니다. 타인을 위한 자유입니다.

물고기 입속의 동전도 주목할 만합니다. 예수는 기적으로 세금을 마련하십니다. 그러나 이 기적은 다른 기적들처럼 공개적이지 않습니다. 조용한 공급입니다. 필요할 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2. 천국에서 큰 자 — 질문의 역전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제자들의 질문이 그들의 상태를 드러냅니다. 방금 예수가 두 번째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근심했습니다(17:23). 그러나 그 근심 안에 다른 생각이 섞여 있었습니다.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실 때, 우리 중 누가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까.

예수는 대답 대신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세우십니다. 행동으로 가르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돌이켜(스트라페테, στραφῆτε)"는 방향을 전환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을 바꾸라. 높아지려는 방향에서 낮아지는 방향으로.

어린 아이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당시 어린 아이는 사회적으로 아무 지위가 없었습니다. 의존적입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내세울 능력이 없습니다. 받는 자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조건입니다. 받는 자로 서는 것.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천국의 크기는 세상의 크기와 반대입니다. 낮은 자가 큽니다. 의존하는 자가 강합니다. 받는 자가 부요합니다. 이것이 팔복의 첫 번째, 심령이 가난한 자와 같습니다.

3. 이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면 — 가장 엄중한 경고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어린 아이를 중심에 세우신 예수가 이제 가장 엄중한 경고를 하십니다.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연자 맷돌은 당나귀가 돌리는 큰 맷돌입니다. 그것이 목에 달려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이 그만큼 무겁다는 것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스칸달론, σκάνδαλον)"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입니다. 신앙에서 넘어지게 하는 것,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것을 가장 심각하게 다루십니다. 왜입니까. 영혼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이것은 문자적 지시가 아닙니다. 과격한 수사입니다. 죄의 원인이 되는 것을 단호하게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영생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영생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말하듯, 영적 성장에서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작은 타협들의 축적입니다. 처음에는 작아 보이지만 결국 실족으로 이어지는 것들. 그것을 처음부터 단호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4. 그들의 천사들이 — 작은 자의 존귀함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경고의 근거입니다. 작은 자에게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 천사들이 하늘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뵙습니다. 이것은 수호 천사의 개념을 넘어서는 선언입니다. 작은 자들은 하나님의 직접적 관심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고 계십니다.

업신여기는 것(카타프로네오, καταφρονέω)은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어떤 면에서든 작은 자를 내려다보는 것을 예수는 금하십니다. 그들 뒤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에 대한 중요한 원칙입니다. 교회 안에서 소외된 자, 약한 자, 지위 없는 자를 어떻게 대하는가가 교회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예수를 어떻게 대하는가입니다(25:40).

5. 잃은 양 한 마리 — 찾으시는 하나님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아니하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는 세 개의 잃은 것 비유 중 하나로 등장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작은 자를 업신여기지 말라는 문맥 안에 있습니다.

백 마리 중 하나. 1퍼센트입니다. 그러나 목자는 아흔아홉을 두고 그 하나를 찾아갑니다. 비효율적으로 보입니다. 경제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논리입니다. 숫자의 논리가 아닙니다. 한 영혼의 가치입니다.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잃어버리지 않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 명도. 공동체의 사명은 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실족하게 하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고, 찾아가는 것.

프란시스 쉐퍼가 강조하듯, 진정한 공동체는 효율이 아닌 관계로 움직입니다. 한 명을 위해 아흔아홉을 두고 가는 것이 불합리해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6. 형제의 죄를 다루는 방법 — 회복을 위한 절차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죄를 다루는 세 단계 절차입니다.

첫 번째, 단둘이 가서 권고합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공개하지 않습니다. 소문내지 않습니다. 직접 갑니다. 목적은 "형제를 얻는 것"입니다. 정죄가 아닙니다. 회복입니다.

두 번째, 한두 증인을 데리고 갑니다. 처음 권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한두 사람과 함께 갑니다. 신명기 19:15의 "두세 증인"의 원칙입니다. 객관성을 위한 것이고, 확증을 위한 것입니다.

세 번째, 교회에 알립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 전체에 알립니다. 그리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대합니다. 관계가 단절됩니다.

이 절차의 정신이 중요합니다. 모든 단계가 회복을 목표로 합니다. 형제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단죄하거나 내쫓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방인과 세리처럼 대한다는 것도 버린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였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복음을 전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가 말하듯, 교회 권징의 목적은 정화가 아닙니다. 회복입니다. 죄인을 회복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목표를 위해 절차가 있습니다.

7.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 공동체와 임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공동체 강화의 결론입니다. 두 사람이 합심하여 구하면 이루어집니다. 두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면 예수가 그들 중에 계십니다.

"내 이름으로"는 예수의 권위 아래, 예수의 뜻을 따라라는 뜻입니다. 모든 모임이 예수의 임재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 예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전제입니다.

이것은 큰 교회, 많은 인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두세 사람. 작은 수이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면 예수가 계십니다. 마태복음은 임마누엘로 시작해서(1:23) 임마누엘로 끝납니다(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공동체 안에 예수가 계십니다. 이것이 공동체의 능력이고 소망입니다.

더 깊은 묵상을 원하시는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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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의 적용

이 본문은 공동체 안에서의 삶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낮아지십시오. 천국에서 큰 자는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오늘 내가 높아지려는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낮아지는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까.

둘째, 작은 자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교회 안에서 소외된 자, 약한 자, 실족 위험에 있는 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그들 뒤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셋째, 잃어버린 자를 찾으십시오. 교회를 떠난 한 사람을 위해 아흔아홉을 두고 찾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공동체가 함께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예수가 계십니다. 오늘 당신의 모임이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 기도

주님,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높아지려는 본능을 내려놓고 천국의 크기가 세상과 다름을 알게 하소서. 공동체 안의 작은 자들을 소중히 여기게 하시고, 한 영혼을 잃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 형제의 죄 앞에서 단죄가 아닌 회복을 목표로 하게 하소서. 오늘도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자리에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다음 묵상: 마태복음 18:21-35 —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지 않는 종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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