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ving Bible 말씀 묵상 | 마태복음 강해 시리즈 #037
📖 본문 (마태복음 19:1-15, 개역개정)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편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시니라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되느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 문맥과 위치
18장의 공동체 강화가 끝났습니다. 19장은 새로운 지리적 이동으로 시작됩니다. "갈릴리를 떠나." 이제 예수는 예루살렘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하십니다. 마태복음에서 이 이동은 십자가를 향한 여정의 시작입니다. 19-20장 전체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의 가르침들입니다.
그 첫 번째 가르침이 이혼에 관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시험하러 왔습니다. 이혼 논쟁은 당시 유대교 안에서 뜨거운 쟁점이었습니다. 예수는 논쟁의 틀을 벗어나 창조의 원리로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본문은 어린 아이들을 영접하시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결혼과 가정, 그리고 아이들. 삶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들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 강해
1. 갈릴리를 떠나 — 예루살렘을 향한 첫 걸음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편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마태복음에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는 다섯 강화의 마무리에 사용되는 공식적 표현입니다(7:28, 11:1, 13:53, 19:1, 26:1). 이제 네 번째 강화(18장)가 끝났습니다. 예수는 갈릴리를 떠나십니다.
갈릴리는 예수의 사역 본거지였습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고, 제자들을 부르신 곳이며, 산상수훈을 가르치신 곳입니다. 이제 그곳을 떠나십니다. 유대 지경으로,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를 향해.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시니라." 이동 중에도 치유는 계속됩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길이 멈춤 없는 사역의 길입니다. 십자가를 향해 가시면서도 고통받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2. 어떤 이유가 있으면 — 시험의 배경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논쟁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 안에 두 학파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샴마이 학파는 음행(성적 부정) 외에는 이혼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힐렐 학파는 "어떤 이유"도 이혼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음식을 태웠거나 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다는 이유도 포함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이 논쟁 안에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어느 편에 서든 다른 편의 비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 논쟁의 틀 자체를 거부하십니다. 허용 범위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본래 의도로 돌아가십니다.
3.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 창조의 원리로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예수는 두 개의 창세기 구절을 인용하십니다. 창세기 1:27("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과 창세기 2:24("한 몸이 될지니라"). 이혼 논쟁에서 예수는 이혼법으로 가지 않으십니다. 창조로 가십니다. 결혼이 무엇인지를 먼저 묻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결혼은 인간의 계약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입니다.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은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결합입니다. 그 결합을 인간이 나눌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결혼의 신성함에 대한 선언입니다. 결혼은 두 사람의 합의로 시작되지만, 그 합의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는 것은 모든 결혼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그 신성함 때문에 함부로 나눌 수 없습니다.
4.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 모세의 허락과 창조의 본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바리새인들이 반격합니다. 그러면 모세는 왜 이혼 증서를 허락했습니까. 예수의 대답이 중요합니다. 모세가 "명한" 것이 아니라 "허락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혼이 하나님의 이상이 아닙니다. 인간의 완악함에 대한 규제입니다.
"마음의 완악함(스클레로카르디아, σκληροκαρδία)"은 마음이 굳어진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는 마음입니다. 이상적 세계에서는 이혼이 없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세계에서는 결혼이 파괴되는 현실이 있습니다. 모세의 이혼법은 그 현실을 규제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버림받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본래"로 돌아가십니다. 허용의 한계를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원래 의도를 회복하는 것. 이것이 예수의 방식입니다. 율법의 문자가 아니라 창조의 정신으로. 이것이 5:17에서 예수가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신 것의 구체적 적용입니다.
기독교 결혼의 이상은 영속성입니다.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헤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이 현실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이상을 가르치시면서 동시에 현실의 아픔 안에 계십니다.
5. 음행한 이유 외에 — 예외 조항의 의미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예수는 한 가지 예외를 인정하십니다. 음행(포르네이아, πορνεία). 이것이 "음행한 이유"입니다. 이 예외 조항은 마태복음에만 있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없습니다. 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의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가 예외를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수의 강조점은 결혼의 영속성과 이혼의 심각성입니다. 예외 조항은 현실의 극단적 상황에 대한 인정이지, 이혼을 장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본문이 이혼을 경험한 분들에게 정죄의 말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는 상처 입은 자들을 정죄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상을 제시하시고, 그 이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초대하십니다. 결혼이 파괴된 고통 안에 있는 분들에게도 예수의 긍휼이 향합니다.
6.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 — 독신의 소명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제자들의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이혼이 이렇게 제한된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합니다. 예수는 그 말을 받아들이시되,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 독신의 소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는 것. 이것은 강요가 아닙니다. 소명입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7장에서 같은 원리를 가르칩니다. 결혼과 독신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누구에게나 독신의 소명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을 분별해야 합니다. 결혼도 소명이고, 독신도 소명입니다. 어느 것이 더 거룩하거나 우월하지 않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을 따르는 것이 지혜입니다.
7.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 거부에서 영접으로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이혼 논쟁 직후 어린 아이들 장면이 이어집니다. 이 배치가 의도적입니다. 결혼과 가정에 관한 가르침 직후, 그 가정의 열매인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예수께 데려왔습니다. 안수와 기도를 원했습니다. 제자들이 막았습니다. 왜 막았을까요. 중요한 분의 시간을 아이들 때문에 낭비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예수의 반응이 즉각적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막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18장에서 어린 아이를 중심에 세우신 것이 반복됩니다. 천국은 어린 아이 같은 자의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습니다. 받기만 합니다. 의존합니다. 그 의존이 천국의 자세입니다. 예수는 그 자세를 가진 자들을 향해 열려 계십니다.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예수는 아이들에게 직접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기도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의 마음입니다. 제자들이 막는 자리에서, 예수는 직접 안수하십니다. 어떤 장벽도 예수와 어린 아이 사이를 막지 못합니다.

🌿 삶에의 적용
이 본문은 두 영역에서 오늘을 향합니다.
결혼에 관해서, 예수의 가르침은 창조의 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결혼의 영속성을 기억하고, 그 거룩함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결혼 생활 안에서 이혼의 유혹이 올 때, 본래의 원리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그리고 이미 결혼이 파괴된 아픔을 지닌 분들에게, 예수의 긍휼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 관해서, 교회와 가정 안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합니까. 제자들처럼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는 아이들을 용납하십니다. 그들을 중심에 세우십니다. 아이들이 예수께 나아오는 것을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처럼 예수께 나아가는 것.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아도 됩니다. 손이 비어 있어도 됩니다. 예수는 안수하시고 기도해 주십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기도
주님, 결혼의 거룩함을 지키게 하소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는 고백으로 결혼 안에서 신실하게 살게 하소서. 결혼의 아픔을 지닌 자들에게 주님의 긍휼이 임하게 하소서. 어린 아이들을 예수께 데려오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게 하시고, 그들을 막는 자리에 서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어린 아이처럼 빈 손으로 주께 나아갑니다. 안수하시고 기도해 주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다음 묵상: 마태복음 19:16-30 — 부자 청년, 낙타와 바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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