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ving Bible 말씀 묵상 | 마태복음 강해 시리즈 #044
📖 본문 (마태복음 22:23-46, 개역개정)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형제가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 여자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셨으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말문이 막히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하여 그를 주라 불렀느냐 일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불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 이후로는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 문맥과 위치
22장의 논쟁이 계속됩니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의 세금 질문이 실패했습니다. 이제 사두개인이 등장합니다. 부활 논쟁. 그 다음 바리새인의 율법사가 가장 큰 계명을 묻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가 역으로 질문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인가, 다윗의 주인가.
이 세 단락은 예루살렘 주간 논쟁의 마무리입니다. 각 그룹이 한 번씩 예수를 시험하고, 모두 침묵합니다. 마지막에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 이후로는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논쟁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적대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 강해
1. 부활 없다 — 사두개인의 전제와 함정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모세오경에는 부활에 관한 명시적 언급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부활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계대 결혼(신 25:5-6)의 극단적 예를 듭니다. 한 여인이 일곱 형제와 차례로 결혼했습니다. 부활하면 누구의 아내입니까. 이 질문은 부활을 현세의 연장으로 이해할 때 생기는 문제를 보여줍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의 불합리함을 논리로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의 전제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들은 부활 세계를 현세와 같은 것으로 가정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현세의 관계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전제를 예수가 먼저 부수십니다.
2.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 두 가지 오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예수의 진단이 날카롭습니다. 두 가지를 모릅니다.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 사두개인들은 성경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모른다고 하십니다. 문자는 알았지만 의미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관해서는 자신들이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만 생각했습니다. 부활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하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신학적 오류의 근원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거나.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입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부활 세계는 현세의 연장이 아닙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결혼 제도는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자녀를 낳고, 인류를 이어가고, 관계를 구조화하는 것. 부활 세계에서는 그 필요가 없습니다. 새로운 질서가 있습니다.
3.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 현재형의 선언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셨으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이것이 예수의 부활 논증의 핵심입니다. 출애굽기 3:6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이 말씀이 선언될 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현재형으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 하나님이로라." "나는 … 하나님이었노라"가 아닙니다. 현재형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사두개인들이 사용하는 모세오경에서 나온 논증입니다. 그들의 무기를 들어 그들을 반박하십니다.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가르침의 권위가 다시 드러납니다.
부활은 인간의 철학에서 나온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성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과 관계 맺는 자들은 죽음을 넘어서 살아 있습니다. 부활은 단순히 시신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죽음을 넘어서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4. 가장 큰 계명 — 두 사랑이 율법의 강령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율법사가 묻습니다.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당시 랍비들은 613개의 계명을 어떻게 서열화할 것인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무거운 계명과 가벼운 계명을 구분했습니다.
예수는 두 계명을 선언하십니다. 신명기 6:5의 하나님 사랑과 레위기 19:18의 이웃 사랑.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 강령(크레만뉘미, κρεμάννυμι)은 매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율법이 이 두 계명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 두 사랑이 율법 전체의 뿌리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세 가지가 열거됩니다. 히브리어 원문(신 6:5)은 마음, 목숨, 힘이었습니다. 마태는 "뜻"을 추가합니다. 전인격적 사랑입니다. 감정(마음), 의지(목숨), 지성(뜻)이 모두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일부만이 아닙니다. 전부입니다.
첫 번째 계명이 크고, 둘째 계명이 그와 "같습니다." "같다"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보다 우선합니다. 그러나 둘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요일 4:20).
두 계명은 하나의 사랑의 두 방향입니다. 위를 향한 사랑과 옆을 향한 사랑. 위를 향하지 않으면 옆으로의 사랑이 공허하고, 옆을 향하지 않으면 위를 향한 사랑이 거짓입니다.
5. 다윗이 그를 주라 불렀으니 — 예수의 역질문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논쟁의 흐름이 바뀝니다. 지금까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시험했습니다. 이제 예수가 먼저 질문하십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누구의 자손입니까. 그들이 답합니다. 다윗의 자손.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가 시편 110:1을 인용하십니다.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다윗이 이 시를 썼습니다. "주께서"는 하나님이시고, "내 주께"는 메시아입니다. 즉, 다윗이 메시아를 "내 주"라고 불렀습니다.
예수의 논증입니다. 다윗이 메시아를 자신의 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일 수 있습니까. 아들은 아버지보다 낮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메시아를 자신보다 높은 "내 주"라고 불렀습니다.
이 역설을 어떻게 풀 수 있습니까. 메시아는 다윗보다 나중에 태어났으나(다윗의 자손) 다윗보다 먼저 계신 분입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인성과 신성이 한 분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자신에 대한 선언입니다.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 이후로는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모든 논쟁이 끝났습니다. 그들은 침묵했습니다. 예수의 권위 앞에서, 그들의 질문들이 얼마나 얕은 것이었는지가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침묵이 회개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갑니다.
예수에 대한 지적 논쟁은 언제나 결국 같은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가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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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의 적용
이 본문은 세 가지 방향에서 오늘을 향합니다.
부활에 관해서, 우리는 부활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사두개인처럼 현세의 연장으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차원이 다른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이해합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이삭의 하나님이시고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지금도 하나님 앞에 살아 있습니다. 우리도 그러할 것입니다.
두 계명에 관해서, 나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그 사랑이 이웃 사랑으로 이어집니까. 율법의 강령이 내 삶의 강령이 되고 있습니까. 규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해서, 나는 예수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선지자, 교사, 좋은 사람으로만 생각합니까. 아니면 다윗보다 먼저 계신 분, 다윗이 주라고 부른 분으로 고백합니까. 예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올바른 신앙의 기초입니다.
🙏 기도
주님,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바르게 알게 하소서. 부활의 소망이 현세적 기대를 넘어서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살아 있다는 확신으로 오늘을 살게 하소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를 사랑하게 하시고, 그 사랑이 이웃을 향해 흘러가게 하소서. 다윗의 자손이시면서 다윗의 주이신 예수님을 오늘도 주로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다음 묵상: 마태복음 23:1-39 — 화 있을진저,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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