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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예배

우리집 작은교회 2026년 10월 4일 주일 가정예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⑮

by 묵상하는 사람 2026. 10. 4.

포도원 주인이 기다리는 열매

본문: 마태복음 21:33–46


들어가는 말 — 우리는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집, 내 돈, 내 직장, 내 시간, 내 자녀, 내 재능, 내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표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한 걸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정말 그것들이 모두 내 것일까요?

성경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가르칩니다.

내가 가진 생명도 하나님께서 주셨고, 가족도 하나님께서 맡기셨으며, 시간과 재능과 물질도 하나님께서 맡기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청지기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내 것이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을 나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가 더 중요한 질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을 아주 강렬한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1.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 마태복음 21:33

주인은 포도원을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산울타리를 두르고, 포도즙을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까지 세웠습니다.

그리고 농부들에게 맡겼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농부들이 포도원을 만든 사람도 아니고 소유한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주인이 맡긴 포도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우리가 가진 것을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내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내 돈,

내 집,

내 자녀,

내 직장,

내 명예,

내 계획,

내 인생.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입니다.”

이 고백이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내 자녀를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진 자녀로 바라보게 됩니다.

내 돈을 내가 원하는 대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물로 바라보게 됩니다.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시간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내 인생조차도

“하나님, 제 인생은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2. 주인은 때가 되자 열매를 요구했습니다

3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주인은 농부들에게 갑자기 무리한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포도원을 맡길 때 열매를 기대하고 맡겼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거둘 때가 되자 열매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을 맡기셨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삶에서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그 열매는 단순히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돈을 얼마나 벌었는가,

얼마나 유명해졌는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갔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는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열매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어떤 반응을 보여주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

용서의 열매,

정직의 열매,

섬김의 열매,

순종의 열매,

믿음의 열매입니다.

지난번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말씀을 기억해 봅시다.

우리는 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엄청난 빚을 갚을 수 없었던 사람이 주인의 은혜로 탕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는 어떤 삶이 나타나야 합니까?

용서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또 다른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삶에서 어떤 열매가 나타나고 있는가?


3. 농부들은 주인의 종들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주인이 종들을 보내자 농부들은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돌로 쳤습니다.

주인은 다시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습니다.

이 장면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

“우상을 버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

“정의를 행하고 하나님을 섬기라.”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말씀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다시 말씀하십니다.

또 말씀하십니다.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설교를 통해 말씀하시고,

부모의 권면을 통해 말씀하시고,

때로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냐보다 내가 그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말씀을 들었는데도 내 생각을 고집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이미 내가 결정한 길을 하나님께 따라오시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내가 주인인 것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4. 마침내 주인은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37절에서 비유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종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이 아들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마지막에는 자기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단순히 좋은 말씀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아들을 보고 말합니다.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여기에서 인간의 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들은 포도원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듯 행동합니다.

주인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아들을 제거하면 자신들이 주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죄의 깊은 모습입니다.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을 몇 가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가장 깊은 곳에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다.”

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내가 결정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셔도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보여주셔도 내가 원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조차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나를 도와주는 분 정도로 생각합니다.


5. 그런데 버림받은 아들이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농부들은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시편 118편을 인용하십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버린 돌을 하나님께서는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음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사람들이 버린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높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단순히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는 도덕적인 결심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먼저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6. 하나님의 나라는 열매 맺는 사람에게 맡겨집니다

43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민족이 받으리라.”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찾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만들기 위해 “나는 사과를 만들어야 해”라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가 열립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삶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사랑하게 됩니다.

용서하게 됩니다.

섬기게 됩니다.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합니다.

실패했을 때 다시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그것이 은혜가 만들어 내는 열매입니다.


7. 그렇다면 우리 가정에는 어떤 열매가 있습니까?

이제 오늘 말씀을 우리 가정에 적용해 봅시다.

우리집 작은교회는 작은 포도원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족을 맡기셨습니다.

시간을 맡기셨습니다.

물질을 맡기셨습니다.

각자의 재능을 맡기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서 찾으시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서로 사랑하는 열매가 있습니까?

서로 용서하는 열매가 있습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열매가 있습니까?

자녀를 존중하는 열매가 있습니까?

힘든 가족을 돌아보는 열매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열매가 있습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아빠가 주인입니까?

엄마가 주인입니까?

자녀가 주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가정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께서 맡기신 사람들입니다.


맺는말 — 주인의 것을 주인께

오늘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에게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이어서 묻습니다.

“내가 네게 맡긴 삶에서 어떤 열매가 맺히고 있는가?”

우리는 때때로 농부들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내 권리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을 앞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다시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돌,

그러나 하나님께서 머릿돌로 세우신 돌.

그분이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님, 제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집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것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게 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제 삶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맺히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힘으로 열매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그리스도를 닮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집 작은교회가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라 맡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삶에서 하나님은 열매를 기다리십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참된 주인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이 고백이 우리집 작은교회의 매일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