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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예배

우리집 작은교회 | 2026년 8월 30일 주일 가정예배 본문: 마태복음 16:21~28 시리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 11부

by 묵상하는 사람 2026. 8. 29.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신다

인간의 참상과 복음의 능력


예배 순서

순서 내용
1 묵상기도
2 찬송 —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새찬송가 149장)
3 사도신경 신앙고백
4 대표기도
5 성경봉독 — 마태복음 16:21~28
6 설교 —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신다
7 결단찬송 — "십자가를 내가 지고" (새찬송가 341장)
8 함께 기도
9 주기도문
10 축도
11 광고

1. 묵상기도

하나님 아버지, 인간의 참상을 아시고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 주일 아침 우리 가족이 주님 앞에 모였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보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새롭게 붙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찬송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새찬송가 149장)

오늘 예배의 문을 여는 찬송으로 이 곡을 선택했습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라는 가사는 오늘 설교의 핵심인 "인간의 자기 사랑과 나르시즘이 십자가 앞에서 무너진다"는 것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를 배경으로 한 찬송입니다. 이 찬송으로 예배를 시작하며 우리의 시선을 십자가 앞에 둡니다.


3. 사도신경 신앙고백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4. 대표기도

하나님 아버지, 인간의 참상을 아시면서도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주일 우리 가족을 다시 말씀 앞에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한 주간 각자의 자리에서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한 입으로 주를 고백하면서 동시에 내가 주인 자리에 앉으려 했던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허락하옵소서. 듣는 우리 각자의 마음에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갈라디아서의 고백이 살아나게 하옵소서. 이 가정이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이 행하신 복음 위에 서게 하옵소서. 우리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시고 세계 열방 가운데 이 복음이 흘러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5. 성경봉독

마태복음 16:21~28

21절 이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절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6. 설교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신다

인간의 참상과 복음의 능력


서론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놀라운 장면을 봅니다.

바로 직전 장면에서 베드로가 위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베드로를 통해 일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순간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막아섭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같은 베드로입니다. 같은 입입니다. 방금 전까지 하나님 아버지가 일하신 그 입에서, 이제 사탄이 역사합니다.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야고보서 3장 10절입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것이 우리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 인간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참상 한가운데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선언합니다.


첫째 — 인간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이면서 사탄이 역사하는 자리이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17절, 23절)

베드로 안에서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알게 하신 고백과, 사탄이 역사한 만류가 같은 입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사탄이 역사하는 자리가 인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랫동안 잘못 이해해온 것이 있습니다. 사탄이 어디 먼 곳에 있다가 사람에게 기어들어오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 안에 이미 깃들어 있습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마음 자체가 부패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9절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악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안에서 나옵니다.

인간이 자기 본성대로 살 때, 그것이 사탄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기 생각대로, 자기 판단대로 말했을 때 사탄의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탄아"라고 하신 것은 이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사탄이 아닙니다. 그러나 타락한 본성대로 살 때 사탄의 일을 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를 기억하십시오.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나르시스트입니다. 자기를 사랑합니다. 자기가 중심입니다. 자기가 판단권자입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 나르시즘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돈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돈을 사랑하는 것이 왜 악의 뿌리입니까? 돈 사랑이 자기 사랑의 가장 적나라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돈은 내 안전, 내 욕망, 내 권력을 보장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이 참상을 절규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것이 우리입니다.

그리고 이 인간의 참상을 드러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이 아닙니다. 이 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선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둘째 — 예수님이 그 자리로 오셔서 순종하심으로 십자가를 완성하셨다

"이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1절)

"살아나야 할 것." 헬라어 데이(δεῖ). 신적 필연성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자리로 오셨습니다. 사탄이 역사하는 바로 그 자리, 타락한 본성이 가득한 그 자리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을 대적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사탄이 직접 왔습니다. "고난 없이 영광을 얻으라." 예수님이 물리치셨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를 통해 사탄이 다시 왔습니다. "그리 마옵소서." 예수님이 다시 대적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또 싸우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리고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스스로의 힘으로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수많은 것들이 맞물려 십자가가 완성되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 대제사장들의 음모, 빌라도의 비겁함, 로마 군병들의 집행, 군중의 외침 —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총집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 모든 것이 십자가를 완성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3절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을 따라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행위가 동시에 작동했습니다. 인간의 최악이 하나님의 최선이 되었습니다. 사탄이 가장 크게 역사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가장 크게 일하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무엇이 이루어졌습니까?

예수님이 순종하심으로,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죄와 저주와 불순종을 이기셨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입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담의 불순종이 죄와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이 의와 생명을 가져왔습니다.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 자기 판단으로, 자기 사랑으로 실패한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순종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리 마옵소서"라고 한 자리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원대로"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셋째 —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신다, 이것이 신앙의 출발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절)

많은 설교자들이 이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베드로처럼 하지 말고 자기를 부인하는 참 제자가 되십시오." 그런데 이것이 인간이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설교입니다. 인간이 신앙을 생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나르시즘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자기 노력으로 자기를 부인하겠다는 것 자체가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나는 주인이 아닙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소서." 이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자기 사랑에 프로그래밍된 나르시스트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까?

요한일서 4장 19절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 먼저 사랑하심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자기 사랑에 완전히 갇혀 있던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우리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면서 따른다는 것 — 이것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오직 하나의 이유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에 갇힌 나르시스트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 이것이 성령의 일하심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수동태입니다. 내가 스스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인간의 배신, 음모, 비겁함, 광기가 맞물렸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예수님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나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스스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삶의 사건들을 통해,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결심이 아닙니다. 고백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미 일어난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하셨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바뀐 것이 이것입니다. 베드로가 더 잘하기로 결심해서가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자기 사랑에 갇혀 있던 베드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 목숨을 붙들던 베드로가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순교했습니다.


결론 — 복음으로 오늘을 산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이 주일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더 잘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부터 달라지겠다고 각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내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오늘을 산다는 것은 이것입니다.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베드로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한 입으로 주라고 고백하면서 동시에 내가 주인 자리에 앉으려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 인정 자체가 자기 부인의 시작입니다.

선포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을 선포합니다. 결심이 아닙니다. 이미 이루어진 사실의 선포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하나님의 섭리에 맡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내 하루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내가 통제하려는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나 맡긴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온전히 충실한 것입니다.

다시 붙드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안에서 베드로처럼 "그리 마옵소서"라고 하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자책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이 복음을 다시 붙드는 자리입니다. "나는 베드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미 이기셨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십니다." 다시 선포합니다.

오늘 이 가정에서 이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나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삽니다."

이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을 선포하고, 찬양하고,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 — 이것이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이유입니다.


7. 결단찬송

"십자가를 내가 지고" (새찬송가 341장)

설교 후 결단찬송으로 이 곡을 선택했습니다.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가오리니 세상 욕심 다 버리고 주만 따라가리로다"라는 고백은 오늘 설교의 결론인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선언을 삶으로 응답하는 찬송입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나의 결심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먼저 지셨고,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것임을 고백하며 이 찬송을 부릅니다.


8. 함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인간의 참상을 다시 보았습니다. 한 입으로 고백하고 한 입으로 막는 베드로가 바로 우리임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 참상 한가운데로 예수님이 오셨음을 선포합니다. 십자가로 죄와 저주와 불순종을 이기셨음을 선포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이 고백으로 오늘 한 주를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9.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10. 축도

이제 인간의 참상 한가운데로 오시어 십자가로 죄와 저주와 불순종을 이기시고 부활로 생명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우리 가정과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아닌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11. 광고

[이번 주 가정 안에서 나눌 말씀 묵상 및 기도 제목을 나눕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신다, 마태복음 16장, 마태복음 16장 21절 28절,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 십자가 신앙,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리스도가 사신다, 복음의 능력, 인간의 참상, 인간의 죄성, 자기 사랑, 나르시시즘, 성령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 설교, 기독교 설교, 복음 설교, 개혁주의 설교, 가정예배, 주일 가정예배, 우리집 작은교회, 가정예배 설교, 가정예배 자료, 주일예배, 십자가 묵상, 예수님을 따르는 삶, 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삶, 복음으로 살아가기, 하나님의 섭리, 예수님의 십자가, 십자가와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