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우리가 찾던 그 교회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있느니라
예배 순서
| 순서 | 내용 |
| 1 | 묵상기도 |
| 2 | 찬송 — "교회의 참된 터는" (새찬송가 600장) |
| 3 | 사도신경 신앙고백 |
| 4 | 대표기도 |
| 5 | 성경봉독 — 마태복음 18:15~20 / 출애굽기 12:1~14 / 로마서 13:8~14 |
| 6 | 설교 — 교회, 우리가 찾던 그 교회 |
| 7 | 결단찬송 — "시온성과 같은 교회" (새찬송가 210장) |
| 8 | 함께 기도 |
| 9 | 주기도문 |
| 10 | 축도 |
| 11 | 광고 |
1. 묵상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교회를 세우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 주일 아침 우리 가족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주님께서 이 자리에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지를 성경 앞에서 다시 확인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찬송
"교회의 참된 터는" (새찬송가 600장)
오늘 예배의 문을 여는 찬송으로 이 곡을 선택했습니다. "교회의 참된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 그 사랑과 그 진리로 교회를 세웠네"라는 가사는 오늘 설교의 핵심인 "교회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시는 것"이라는 선언을 온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이 찬송으로 예배를 시작하며 교회의 참된 터가 누구이신지를 먼저 선포합니다.
3. 사도신경 신앙고백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4. 대표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주일 우리 가족을 다시 주님 앞에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한 주간 각자의 자리에서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교회에 대해 상처받고 실망하면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이 자리에 모인 것을 주님께서 아시고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허락하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지를 우리 가족이 분명히 깨닫게 하옵소서. 이 가정이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진정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시고 세계 열방 가운데 참된 교회가 세워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5. 성경봉독
마태복음 18:15~20
15절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절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절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절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절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출애굽기 12:1~14 (핵심 구절)
1절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3절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7절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13절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로마서 13:8~14 (핵심 구절)
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10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4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6. 설교
교회, 우리가 찾던 그 교회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있느니라
서론 — 솔직하게 시작합니다
교회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교회 때문에 상처받은 분 있으십니까? 교회 때문에 실망한 분 있으십니까? 교회를 떠나고 싶었던 분 있으십니까? 아니, 이미 떠난 가족이나 친구가 있으십니까?
목사인 저도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보면서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담임목사가 교회를 개인 왕국처럼 운영합니다. 이제 목사 세습은 당연한 분위기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권력 다툼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파벌을 나누어 싸웁니다. 목사가 성 추문으로 구속됩니다. 교회가 부동산을 사고 파는 일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고 이제는 헌금으로 주식 투자를 본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길을 걷다 교회 십자가를 볼 때 이런 생각이 드는 분이 있지 않습니까? "저기 저 십자가가 예수님의 십자가인가, 아니면 저 건물 주인의 권력의 상징인가?"
이것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가진 솔직한 감정입니다. 그런데 이 감정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감정이 중요한 질문을 만들어냅니다.
"진짜 교회는 어디 있는가?"
오늘 이 질문을 성경 앞에 가지고 나왔습니다.
첫째 — 교회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태복음 16:18)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교회." 내가 세우겠다. 예수님이 세우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보면 어떻습니까? 누가 세웠습니까? 누가 주인입니까? 목사가 사업체 세우듯이 마케팅 원리를 따라 교회를 개척합니다. 이제는 비즈니스 모델을 따라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 되었습니다. 특정 가문이 대를 이어 운영하는 교회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의 뿌리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지난 주 말씀 기억하십니까? 베드로가 인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을 판단했습니다. "그리 마옵소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인간이 주인 자리에 앉으려 할 때 사탄이 역사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주인이 되는 순간, 교회는 세상의 기관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 좋은 교회를 만들면 됩니까? 더 개혁적인 목사를 세우면 됩니까? 더 성경적인 제도를 만들면 됩니까? 그것도 결국 인간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해결책이 아닙니다.
교회에 대한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교회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출애굽기 12장으로 가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어떻게 공동체가 되었습니까? 스스로 조직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회의를 열어서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어린 양의 피가 먼저였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행하셨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지나갈 때,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살았습니다. 그 피 아래 있는 자들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피가 먼저이고 공동체가 그 다음이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원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먼저입니다. 내가 선택해서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피를 뿌리셨습니다. 나는 그 피 아래 있는 자입니다. 그 피로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세상의 기관은 목적이 먼저입니다. 이익이 먼저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피가 먼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먼저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의 모든 기관과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입니다.
둘째 — 교회는 그리스도가 임재하시는 곳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20절)
이것이 교회의 정의입니다.
건물이 교회가 아닙니다. 십자가 간판이 교회가 아닙니다. 주일마다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시는 곳이 교회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크고 화려한 건물이 있어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도, 예수 그리스도가 그 중에 계시지 않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냥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종교 단체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자리가 교회입니다. 오늘 이 거실에 모인 우리 가족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자리에 계십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고백하며 모이는 것입니다. 지난 두 주 동안 우리가 나눈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 고백으로 모일 때, 예수님이 그 가운데 계십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18장 15~19절의 말씀이 새롭게 읽힙니다.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어떻게 합니까? 단둘이 먼저 가서 말합니다. 목적이 무엇입니까? 형제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네가 그 형제를 얻으리라." 얻는다는 말입니다. 징계가 목적이 아닙니다. 회복이 목적입니다.
이것이 왜 가능합니까? 같은 피 아래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의 실패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내 일입니다. 형제의 회복이 내 기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이 말씀이 어떻게 사용됩니까? 회복을 위한 징계가 아니라, 퇴출 혹은 축출의 근거가 됩니다. 권력의 무기가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그 중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어린 양의 피로 시작된 공동체라는 것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 교회는 성령이 세우시는 공동체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14)
바울이 말합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그리고 이 사랑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사랑이 교회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때 사랑이 흘러나오고, 그 사랑이 교회를 형성합니다. 내가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이 될 때 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세 가지로 선명해집니다.
첫 번째 — 진정한 교회를 찾아 헤매지 마십시오.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완벽한 인간들의 모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말씀대로, 우리는 모두 베드로입니다. 한 입으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한 입으로 예수님을 가로 막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두 번째 — 진정한 교회를 만들려 하지 마십시오. "이 교회가 문제니까 내가 바른 교회를 세우겠다." 이것도 인간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세 번째 — 삶을 성령께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세우심을 방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도록 삶을 성령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어린 양의 피로 시작된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자리가 생깁니다.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결론 — 교회, 우리가 찾던 그 교회
진정한 교회를 찾고 싶으십니까?
멀리 갈 것 없습니다. 화려한 외형을 갖춘 교회 건물을 찾을 것 없습니다. 유명한 스타 목사를 찾을 것 없습니다.
어린 양의 피 앞에 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십시오. 그 피로 내가 구원받은 자임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모이십시오. 예수님이 그 가운데 계십니다.
교회 사람에게 실망하셨습니까? 그 실망이 옳습니다. 사람은 실망스럽습니다. 우리 모두 베드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실망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실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타락했다는 것이 예수님이 타락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주인 자리에 앉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수님은 여기 계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 가정에. 이 예배에. 이것이 우리가 찾던 교회입니다. 이것을 선포하고, 찬양하고,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 — 이것이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이유입니다.
7. 결단찬송
"시온성과 같은 교회" (새찬송가 210장)
설교 후 결단찬송으로 이 곡을 선택했습니다. "시온성과 같은 교회 이 세상 중에 서서 파도같이 치는 핍박 두려움 없이 섰네"라는 가사는 오늘 설교의 결론인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이 가정이 진정한 교회"라는 고백을 담아냅니다. 세상이 교회를 흔들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터가 되신 교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찬송을 부르며 우리집 작은교회가 그 반석 위에 서 있음을 고백합니다.
8. 함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교회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양의 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오늘 이 가정이 그 교회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이 자리에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을 성령께 드립니다. 하나님이 이 가정을 통해 교회를 세워 가심을 신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9.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10. 축도
이제 어린 양의 피로 교회를 세우시고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우리 가정과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작은 교회 위에 주님이 계심을 믿노라. 아멘.
11. 광고
[이번 주 가정 안에서 나눌 말씀 묵상 및 기도 제목을 나눕니다]